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곱게 세웠나 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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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수선화에게> 정호승, 비채, 2015.3.28.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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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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